신주쿠에서의 마지막 저녁, 이라고 생각한 저녁밥이었다. 이날은 많이 걸었다. 신주쿠 도쿄도청사 전망대에 갔다가 다시 짐을 보관해놓은 신주쿠역까지 갔다가 오오에도 온천 가는 무료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내가 버스노선을 속속들이 알아서 버스를 탔으면 그렇게 멀지 않을 거리겠는데, 애초에 일본여행할 때 도쿄에서는 걷자, 해서 구글지도 보면서 걸어다녔다. 걷기 하니까 시간이 빨리간다. 한번 헤멜 때마다 몇 십분이 훅 가 있더라고.
こめらく
나는 애초에 구글지도에 가보고 싶은 도쿄맛집들을 별표 쳐 놓았고, 여행 다니다가 가는 길에 들르는 식으로 밥을 먹었다. 이날 저녁은 신주쿠역 가까이에 도쿄 오차즈케맛집으로 유명한 쿠메라쿠를 가기로 했다.
쿠메라쿠는 신주쿠 루미네 이스트ルミネエスト 7층에 있다.
우리나라도 관광지같은데 가면 음식 모형들이 놓여 있다. 비빔밥, 불고기, 된장찌개 등이 모형으로 있어 외국인들도 저거라면 먹을 수 있겠다 , 하고 메뉴 결정을 할 수 있게끔 하는데, 이게 확실히 음식이 아기자기한 일본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모형중에서 '장어와 계란의 히츠마부시세트'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저걸 먹어보자. 그냥 우나기덮밥이 장어덮밥이라면 히츠마부시덮밥은 덮밥의 장어를 더욱 바싹 익힌 것이다.
테이블에는 가쓰오부시, 와사비, 김 등이 있다. 오차즈케에 이걸 넣어먹으라는 거다.
테이블에 오차즈케를 어떻게 먹는지 영어로 된 안내서가 있다. 종업원을 불러 한국어 메뉴판은 없냐고 물어보려다가 아, 그만 두자, 영어사전을 펼쳐놓고 열심히 해석을 하는데..
오차즈케 먹는 법 설명서를 채 해석하기 전에 본메뉴가 나와버렸다. 에이, 그냥 먹어야지, 그러니까 장어랑 계란을 반정도 먹고, 나머지는 다시육수를 부어 말아먹으라는 대충 그런 거.
장어랑 계란을 먹어보는데, 우앗, 했다. 이렇게 야들하고 달콤 짭짤한... 먹고 나서도 여운의 소용돌이가 한참을 돌아다니는 맛이다. 그러니까 이걸 반절 먹고 다시육수 말아 먹으라는 건 느끼할 때쯤 좀 개운한 버전으로 먹으라는 것 같다.
원래 설명서에서는 장어, 계란, 밥을 반쯤 덜어서 사기그릇에다가 물을 말아먹는 거라고 써 있는데 나는 저 나무그릇에서 다 말아먹었네. 말아먹었다고 쓰니까 진짜 망친 것처럼 느껴진다. ㅋㅋ 근데 어떻게 먹어도 맛있으면 그만이니까.
구글지도 댓글에 보니까 맛있어서 입으로 설거지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나도 다 먹고 나니까 절밥 공양할 때 김치로 밥그릇 닦아 먹듯 깨끗하게 먹었다. 이곳의 음식에 대해서 맛은 있는데 비싸다, 혹은 맛도 없고 비싸다 등 혹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대만족, 비싸지만 이정도 맛이라면 또 와서 먹을 것 같은 도쿄맛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쿠메라쿠의 히츠마부시덮밥을 다 먹고 입가심으로 개운한 자스민차
도쿄맛집에서는 계산대의 스이카 표시를 보면 반갑다. 1원 짜리까지 짤짤거리면서 알뜰히 남기는 일본에서 교통카드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건 결재를 기분 좋게 해준다.
가츠오부시 세트 가격 1580엔.
쿠메라쿠에서 한참 맛에 심취해서 둥둥 떠다니다가 루미네에스트를 빠져나가는 길. 문득 우산이 가방 속에 없음을 알았다. 그냥 우산 하나 살까? 하다가 그래도 한번 찾아나 봐야지, 하고 다시 저녁 먹은 곳으로 향했다. 근데 우산이 일본어로 뭐지? 찾아보니까 傘(카사)다.
가서 카사 놓고 왔는데 있냐고 하니까 없단다. 아, 없구나, 하고 나가려는데.
문득 루미네루스트 2층에서 아까 잠시 앉아서 컴퓨터를 두들겼던 생각이 나서 찾아가본다. 그때가 몇 시간 전인데 우산이 있을까?
제발.. 제발..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여 도와주시라, 하고 가보니까...
여자 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뒤로 나의 흰점박 땡땡이 우산이 보였다. 스미마센 하고 우산을 집어오는데 여자분들 좀 놀란 듯.
별로 비싸지도 않은 우산, 별것도 아니지만 찾으니까 기분이 좋다.
도쿄맛집, 쿠메라쿠의 오차즈케도 보너스의 맛이다.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을 때 꿀 빠는 느낌. 그냥 한끼 저녁이지만 장어의 야들함과 육수의 기분좋은 개운함은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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