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부터 후쿠오카까지 일본전국일주를 생각했을 때부터 그 중심에는 교토한달살기가 있었다. 도쿄여행, 큐슈여행이 관광지를 돌아보는 일본여행이었다면 교토여행은 말 그대로 한달살기. 그 동네에서 살아보면서 최소비용으로 구석구석을 다니는 게 목표였다.
친구가 교토대학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나는 원룸 형태로 된 친구의 기숙사 집에 서식할 계획을 세웠다. 2018년 9월 23일 새벽에 도쿄로부터 출발한 고속버스로 교토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10월 14일에 다시 교토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후쿠오카로 떠났다. 딱 3주 머물렀다.
교토한달살기는 애초에 무슨 출장도 아니고 유학도 아니고, 언어연수도 아니고, 그냥 '살기'다. 그래서 한달살기는 시간이 참 안 간다. 회사 안다니고 서울한달살기를 하라고 해도 어쩌면 비슷하겠지.
시간을 가게 만들려면 내가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편하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
외국의 낯선 도시를 돌아다니려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버스를 여기서 타는 게 맞는지, 잘 못 내리지는 않는지, 음식점, 전시관 등의 영업 시간같은 것에 착오는 없는지 조사해야 한다. 시간이 힘들어~
그냥 마음놓고 다닐 순 없을까, 어느날 문득 든 생각이다.
교토에서 마음 놓고 있을 수 있는 곳은 스타벅스다. 일본의 카페들은 한국의 죽치고 있는 곳이라는 개념이 약하다. 핸드폰 충전하는 것도 '전기 도둑'이라는 통념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하고 심지어 금지하고 있는 곳도 있다.
스타벅스는 그래도 한국 스타벅스의 정서와 같은데 한국보다 커피값이 저렴하다. 오늘의 커피가 당시 302엔이었다. 또한 오늘의 커피 한 잔을 사면 "one more coffee"라고 해서 커피 리필을 할 수 있다. 오늘의 커피를 주문한 당일에 162엔(스타벅스 카드 있으면 108엔)만 더 내면 당일 언제든 어느 지점에서든 커피를 한 잔 더 마실 수 있다.
나는 스타벅스 츠타야 오카자키 스토어에서 오전에 한 잔을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에는 스타벅스 교토산조 오하시점에서 한 잔 마시며 하루를 정리하곤 했다.
나혼자 교토한달살기란 화살표와 대화하는 일이다.
어느 건물이나 어디로 가면 뭐가 나오는데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어딜 갈 때마다 끊임없이 브리핑을 받고 있는 기분이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한 교토버스노선도. 물론 패스하고 구글지도를 이용하면 된다.
교토는 도시 규모가 작다보니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많이 이용하게 된다.
이렇게 오타쿠적으로 꼼꼼한 안내도를 작성하는 일본답게 교토의 도시 구조는 정밀함 그 자체다. 교토는 정町이라는 사각형들이 모여 1조條로 묶이는 단위로 그린 바둑판이다.
교토는 무진장 오래되었다. 794년부터 1869년까지 일본의 수도였으니까 근 1000년 동안 수도였다. 한국으로 치면 경주 + 고려의 개경 + 조선의 한성의 수도 역사를 합친 정도랄까.
교토는 헤이안 시대 건설 초기에 이미 지금 도시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최소구획은 헤이안쿄 안의 정(町)으로 일본어로는 '~초' '~마치'라고도 한다. 야인시대 드라마에서 혼마치니 아사히마치니 하는 일본 패거리들 이름이 이거다.
초가 모여서 보, 보가 모여서 방, 방이 모여서 조다. 1정町(400척_120미터 정사각형), 1보保=4정町(800척_240미터 정사각형), 1방坊=4보保(480미터 정사각형), 1조條=4방坊이다.
교토한달살기를 하면서 익숙해지면 지명 이름만 듣고도 위치를 알 수 있다. 걸어갈지, 버스를 이용할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고, 도로의 표지판이나 가게의 간판을 보고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교토의 대표적인 관광지 기온시조(祇園四条)의 시조(四条)는 교토를 세로로 구분하는 10조 중 북쪽에서 네번째, 중간 위치에 자리잡은 신사(神社)라는 뜻이다. 가령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산조(三条)면 멀어야1~2km 남짓한 곳에 기온시조가 있다는 이야기여서 듣자마자 위치를 알 수 있고 걸어서 얼마나 걸릴지 짐작할 수 있다. 이건 1000년 전에 교토에서 살았던 사람을 불러내 당신 집은 어디에 있었소? 하고 물으면 단번에 찾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도시가 외국 침략에 유린되는 일이 드물었다. 그래서 유적지가 별로 훼손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1000년 동안 수도였던 교토는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문화재다.
교토한달살기를 하면서 부지런히 교토의 정원들을 찾았지만 그렇게 찾아 다녔는데도 유명한 정원들조차 다 다니지 못했다.
교토의 유명한 정원으로 니죠죠(二条城), 텐류지(天龍寺), 다이카쿠지(大覺寺), 료안지(龍安寺), 긴카쿠지(銀閣寺), 킨카쿠지(金閣寺), 난젠지 (南禪寺), 다이토쿠지 (大德寺), 만슈인 (蔓殊院), 고다이지 (高臺寺), 뵤도인 (平等院) 등이 있다.
교토의 정원들은 한 장소에서 여러 시각으로 봐도 작품이 될 수 있도록 고도로 다듬어진 풍경이다. 처음에는 살면서 이런 아름다운 정원을 보는구나 하면서 연신 감탄했는데, 이런 정원들이 도시 곳곳에 있다보니 나중에는 그 특유의 마이크로한 설정이 질리더라고. 되려 야산같은 자연미가 그립더라.
교토한달살기를 하면 자전거여행이나 걷기여행으로도 충분히 여유롭다. 정원을 쉼터 삼아 이번엔 이 정원 다음엔 저 정원.
교토 한 가운데를 흐르는 카모강. 강 좌우에는 그 옛날 교토의 강변을 재현해놓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냥 카모 강변만 따라서 걷기만 해도 교토가 내 품에 있다.
기온시조로부터 가와라마치 가는 다리변.
1000년 전에도 사람들은 이 노을을 보면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겠구나. 하루 장사를 끝내고, 혹은 농사일을 마치고... 해질녘 카모 강변에 가면 웬지 눈물이 난다.
교토는 도시의 상당 부분이 이렇게 옛 거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일본 일주를 하면서 거의 매끼 점심을 라멘으로 먹다시피 했는데 교토에서는 일부러 좀 쉬었다. 교토의 라멘은 기본에 충실한 돈코츠라멘, 미소라멘 외에 닭 육수로 만든 라멘이 유명하다. 나는 돈코츠보다 이게 낫더라고.
아, 그리고 교토한달살기를 하면서 많이 먹었던 오야코동おやこどん(親子丼) 일본식 닭고기 계란 덮밥인데 오야가 부모, 코가 자식이라는 뜻이라 닭과 달걀이 같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다.
저렴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자주 먹었던 교토의 오야코동.
교토에서는 관광지에서 조금만 비껴 서면 저렴하고도 푸짐하고 맛도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소바랑 튀김이랑 같이 먹는 텐자루てんざる 정식은 9백엔에 먹은거다. 간판에 하야시라고 써진 가게였는데 그 옛날 김두한과 대립했던 그 하야시가 생각나서 볼 때마다 재미있더라는. 물론 전혀 상관 없다. 빨리를 뜻하는 하야이, 싸다 야스이, 맛있다는 오이시, 가 합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국 돈으로 만원이 넘지 않는 저 정식이 하야시 가게에서 가장 비싼 메뉴였다.
추억의 고명용으로 썰린 계란 지단. 뭣하면 이렇게 친구 기숙사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나와 근처 공원에서 아점을 먹기도 했다.
교토한달살기를 하면서 이래저래 식비도 많이 세이브 했으리라.
음식으로 임신한 듯. 일본 여행을 하면서 점심은 라멘 오오모리를 먹는 게 일이어서 그랬을까? 특히 도쿄 음식 물가는 비싸다보니 만만한 음식이 라멘이라서 탄수화물맨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밤에는 위스키와 오뎅, 명란구이 따위를 처묵처묵하다 보니 배가 이렇게 된 것 같다. 이건 한창 배부를 때 찍은 거긴 하지만...
아, 물론 교토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가성비 메뉴만을 먹지는 않았다. 유명한 식당이라면 몇 만원짜리 장어덮밥이나 두부정식, 규카츠를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사진은 떠나기 전날 친구와 꼬치구이 집에서 송별회.
여행이란 게 돈 드는 요소가 들쭉 날쭉이라 꼭 얼마 든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교토한달살기라면 그래도 패턴이 있으니 하루 단위로 얼마가 드는지 알아보고 30을 곱해본다.
어디까지나 2018년 기준 물가에서...
교토 버스 요금은 거리에 비례하는데 주요 관광지는 기본운임 단일 요금제다. 성인은 230엔, 아이는 120엔으로 관광지 한곳만 왕복해도 500엔이다. 버스는 1일 패스로 600엔이니까 버스 세 번만 타면 더 이익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며칠 여행이 아니라 한달동안 돌아다녀야 했으므로 굳이 이걸 사지는 않았다. 참고로 지하철 요금 또한 여행 구간 기준으로 최저 요금은 JPY 220엔, 최고 요금은 360엔이다.
나는 버스는 하루에 2번만 타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나머지는 걸어다녔다. 그래서 500엔.
편의점 도시락은 내용물에 따라 300~600엔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교토의 저렴한 음식점들도 비슷한 시세다. 요시노야, 마치야, 스키야 등의 초저가 덮밥집도 그렇고... 뭐 가끔 비싼 걸 먹는다 치더라도 기본 먹고 사는 건 저 범위로 설정해본다.
수퍼드라이 한 캔(350㎖)은 217엔, 기타 간식비 과자 한 봉지 213엔이다.
기본 500엔에서 좀 더 먹는 날도 있으니까 1000엔이라고 치자.
작업실로 유용한 스타벅스는 오늘의 커피 "one more coffee" 서비스로 464엔(302엔 + 162엔, 스타벅스 카드는 108엔), 두 번 갈 수 있다.
교토 유적지 입장권은 보통 300엔~500엔
게스트하우스 다인실 2500엔 전후라고 계산해보면 그렇다.
내가 일본여행을 하면서 다녀본 숙소 시세라면 오사카에 있는 고시원식 숙소가 1500~2300엔, 도쿄 고시원식 저가숙소 2000~3500엔이며, 캡슐호텔은 입지와 시설에 따라 2000~4000엔으로 가끔 묵으면 좋다.
비즈니스 호텔 5000엔 전후, 도쿄 비즈니스 호텔은 6000엔 선이었다. 또한 3성급 호텔은 10000엔 전후, 일본 숙소의 꽃이라 불리는 일본 전통 료칸은 조석식 포함해서 2만엔 정도였다.
최소 비용 하루 6000엔으로 잡으면 한 달 180만원 정도이며, 대략 한국에서 한 달 월급으로 받을 수 있는 범위에서 교토한달살기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아까 나왔던 하야시 가게의 튀김 같이 먹었던 그 친구. 옷도 똑같이 입었네.
교토부립도서관은 참 예쁘다.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 펴보는 책 한권.
아이들의 유서.
태어나 버렸다 나.
드디어 여기에 왔다.
여행을 하면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때마다 나도 마음 속으로 '드디어 여기에 왔다'라고 외친다. 다른 말로 해서 나는 살아있다고, 새삼스레 나는 지금 숨 쉬고 있고, 보고 있고,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여행에서 최초의 도착은 이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떤 느낌이다. 그래서 나의 여행기 또한 어떤 유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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